본문 바로가기

영화와 책 리뷰/국내영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러 간만에 극장까지 가서 영화를 보았다.

 

평이 좋아 기대를 좀 했던 탓인지, 실망감이 좀 컷다. 초반은 확실히 재밌었지만, 중후반부 부터는 인물에 대한 몰입감도 떨어지고 전개도 좀 지루해지고, 특히 결말이 또 그저 그런 한국식 신파로 대충 마무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그래도 영화가 던져주는 몇가지 생각해볼만한 주제들이 있었고,

초반에는 한국식 블랙코미디와 오늘날 한국인의 정서가 잘 묻어나 있는 흥미로운 설정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이긴 했다.

그래도 영화관까지 가서 본 건 돈과 시간이 넘 아깝...OTT 기다릴걸 걍...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보게 된 주제는 '가족이나 집단 이기주의'이다.

혈육이든, 아니면 여타의 이유에서 내가 가족이라 생각하게 된 사람들의 집단이든 간에,

그것에 대한 사랑(애착) 때문에 타인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 사랑은 언제든 악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집단보다 나와 내 집단이 더 좋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는 소유욕과 보상심리가 결국엔 배척과 분쟁을 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내에서는)

 

아래는 영화의 줄거리이다.

 

(**아래 내용부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든게 무너진 세상에 홀로 안무너진 아파트 한 동

 

이상저온 현상이 날로 심해지던 가운데 천체 현상에 변화가 생기더니 갑자기 엄청난 지진이 닥쳐

모든게 다 무너져 내리는 대재앙이 발생한다. 하지만 황궁 아파트 한 채만 무너지지 않고 그 형태를 온전하게 보존하여 그 안에 주민들은 아파트 내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밖은 영하 29도를 넘나드는 강추위가 지속되어 지진에서 살아남은 자들도 추위를 버티지 못하면 모두 멸절 되는 가운데, 집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황궁 아파트로 외부 생존자들이 모이게 된다. 

 

극중 박서준 부부의 집에도 고급 모피코트를 입은 아줌마와 아들이 얹혀 살게 되는데, 아줌마가 너무 당연하듯 음식을 먹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모습을 보고 박서준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느끼게 된 계기에는 박서준이 시계와 맞바꿔 힘들게 구해온 복숭아 통조림만은 아내 박보영하고만 먹으려 했는데, 아줌마가 마음대로 방문을 열어제끼는 바람에 아들인 꼬마가 그것을 보고 결국 남은 것을 꼬마가 다 먹어 버리는 데에서 발단하게 된다.

 

어렵게 구해온 황도를 몰래 가족인 박보영에게만 주는 박서준

 

그 전 장면 중 박서준이 황도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통조림을 떨어트려 통조림이 복도 계단에 있던 쇼파에 들어 가는데, 손을 넣어 통조림을 빼자 바퀴벌레들이 드글드글 기어 나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 입주민들은 통조림과 같이 입주민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배급식량을 탐내는 모든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라 부르게 된다.

 

이후 영화에서는 골뱅이 통조림 등 세계관 내 엄청 귀한 재화를 통해 사람들의 계급이 분별되고 불평등이 초래되는 점을 여러번 보여준다.

 

이내 아파트의 한 가구에서 외부인이 집주인과 말다툼 끝에 집주인을 칼로 찌르는 사고가 발생하자, 아파트 주민들은 회의를 열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외부인을 모두 내쫒기로 결의한다.

 

어차피 외부인 대부분은 평소 이 아파트 주민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던 고급 빌라 주민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그들을 내쫒는데에 동의한다.

 

외부인을 모두 내쫒을지에 대해 의논하는 주민들

 

외부인들을 내쫒는 등의 단합행동을 하기 위해 주민들은 대장 노릇을 할 대표를 선임하게 되는데, 이전에 화재 소동 때 신속하게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을 한 이병헌을 뽑게 된다. (화재 진압도 사실 이병헌이 처음부터 희생정신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대사 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나면 아파트 다 홀랑 타버릴 줄 알고 그랬던 것. 단지 그는 쉽게 감정에 몰입하여 고조되고, 하지만 그만큼 실행력이 빠르고 강한 캐릭터로 비춰진다.)

 

 

선택받은 아파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병헌

 

하지만 사실 이병헌은 이 아파트의 주민이 아니다.

 

택시 기사를 하던 이병헌은 딸과 아내를 위해 자가를 마련하려고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계약하지만 부동산 사기를 당하게 된다. 하루 아침에 집도 없이 빚에 떠앉은 신세가 된 이병헌은 분노로 가득차서 사기에 연루되어 있던 남자의 집에 칩입한다. 그 칩입하게 된 아파트가 황궁 아파트인 것이다. 그 사기꾼 남자에게 '너네 집이라도 내놓던지 아님 돈을 돌려달라' 싸움을 하다가 그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인하게 된다. 그 순간 지진이 발생하고 딸과 아내 모두 지진으로 잃고, 갈 곳이 없어 다시 살인을 저질렀던 이 아파트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주민 중에 한 사람이 이병헌의 신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부녀 회장이 입주민이면 충분하지, 그런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며 "지금 상황에선 살인자나 목사님이나  똑같은거 아니냐"며 이병헌을 두둔한다.

 

살인자란 말에 이병헌은 흠칫하지만, 택시 기사 전 전직 군인이었던 이병헌은 이내 수색대를 만들고 외부인들을 무력으로 내쫒을 전략적인 계획을 수행하며 카리스마 있고 열정 넘치는 대표로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빈집을 배정해준다고 속이고 외부인을 모두 밖으로 내몬 후 못들어오게 막아서는 주민들

 

외부인을 내모는 과정 중에 외부인 중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거만해보이는 남자가 이병헌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내려치게 되는데, 이병헌이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강하게 제압하자 주민들은 이에 분위기를 타 사기를 충전하여 고층 옥상에서 벽돌을 떨어뜨리는 등 외부인들을 강하게 제압하여 모두 내쫒는다.

 

악에 받쳐 외부인들을 모두 내쫒는 이병헌

외부인이 모두 떠나자 주민들은 환호하며 이병헌을 치켜세운다.

 

가족과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병헌은 아마 이 순간에, 자신을 의지하고 치켜세워주는 주민들을 보며 다시금 자신이 지켜내야 할 것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집단을 자신의 가족처럼, 이번에야 말로 지켜내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아파트 내 주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뿌듯해하고 있는 이병헌

 

이병헌은 수색대 대장으로 박서준을 임명하고 신체 건강한 남자들을 모두 인솔하여 식량을 구해오기 시작한다. 구해 온 식량은 보상을 받기에 합당한 수색대와 그 외 모두 아파트를 지키는 일에 일조한 사람들 순서로 배급하여 생존 체계를 정립한다. 

 

수색대로서 이병헌과 함께 긴밀하게 일하면서 박서준 역시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황궁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점점 인간성까지 잃어가며 물불 안가리고 식량을 구하고 칩입자를 막아서게 되는데,

 

그가 인간성을 잃어 가고 있는게 보였던 사건은 수색대가 한 슈퍼를 발견하여 음식들을 가져가려 하다가 슈퍼 주인 아저씨가 엽총을 들이대며 고등학생이었던 수색대 일원 남자애를 인질로 잡고 "더 이상은 안돼! 나가"라고 하며 소동을 피자 이병헌의 눈짓 사인에 따라 그 아저씨를 뒤에서 파이프로 내리쳐 쓰러트린 후 부터이다.

 

더 이상은 안된다며 총구를 겨누며 수색대를 내쫒는 슈퍼아저씨

슈퍼 아저씨도 '더 이상은 안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음식을 나누어 줬겠지만 아저씨에게도 처자식이 딸려 있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것인데 그런 아저씨를 또 수색대가 자신의 집단을 위해, 무력으로 제압하고 약탈한 것이다.

 

이서준은 심하게 맞아 쓰러져 있는 슈퍼 아저씨 위로 오열하는 아내와 딸을 보며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과 황궁 입주민들도 자기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들을 쫒아냈으면서 똑같은 상황인 슈퍼아저씨가 자기네들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면서 그를 공격한 것이다. 

 

수색대 일을 하며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박서준

 

수색대가 범위를 넓혀가며 일을 하자 외부에 생존한 자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그들이 매우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아가며 생존하고 있다고 적대화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박서준의 아내인 박보영은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도덕성을 준수하며 외부인 모두를 도와주고 다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박서준이 점점 변해가자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비윤리적인 행위도 일삼으며 수색대 일을 하는 박서준이 걱정되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한 박보영

 

그리고 박보영은 자신의 남편을 비롯에 입주민들을 비인간적인 사상을 갖게끔 선동하는 이병헌을 몰아내기 위해 그의 신분을 캐기 시작한다. 결국 박보영은 이병헌이 죽인 원래 입주민인 사기꾼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주민들에게 폭로하여 이병헌이 만들어둔 황궁아파트의 생존 체제를 무너뜨린다. 

 

모든 정체가 드러나 주민들의 신뢰를 잃은 이병헌

 

이제는 '박보영의 선동'에 동조한 주민들이 이병헌을 몰아내려 하고 배신감을 느낀 박서준도 이병헌을 죽이려 한다.

 

이 때 재밌는 장면이 있는데 군중이 이병헌을 죽이려 할 때 이병헌이 죽인 사기꾼의 어머니였던 노모의 반응이다. 치매 때문에 확실히 인지하진 못했겠지만 이병헌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장면을 또렷이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두세달간 이병헌이 황궁 아파트에 신분을 속이며 살며 그 노모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뜰히 챙겨줘서 인지 (할머니의 용변도 싫어하는 내색없이 닦으며 챙겨줬던 이병헌) 그새 자신의 아들이 이병헌이라 인식하고 이병헌을 때리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 점은 완전한 타인이었던, 심지어 할머니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인 이병헌이 할머니와 같이 살며 가족과 같이 됬다는 점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어쨋든 그렇게 이병헌 체재의 붕괴가 찾아오고 내부 분열이 일어나 혼란스러울 때 설상가상으로 황궁 아파트 입주민을 좋게 보지 않았던 외부인 집단이 군집하여 몰려와 황궁 아파트를 공격한다.

 

이때에도 이병헌은 외부인이 던진 부탄가스로 만든 화염폭탄을 몸을 날려 주워 주민들을 피하라고 하며 멀리 다시 던져버린다. 하지만 자신도 큰 부상을 입게되어 결국 칩입했던, 하지만 자신의 집이라 믿고 싶었던 집으로 돌아가 최후를 맞이한다. 

 

성난 외부인들의 칩입을 받는 황궁 아파트

 

외부인들의 공격에 박서준 또한 치명타를 입은 채로 박보영과 함께 아비규환이 된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박서준은 박보영과 함께 어느 성당으로 보이는 곳의 잔해에 누워 최후를 맞이하며 재앙 후 자신이 나타낸 비윤리적인 행동에 후회를 하며 죽는다. (이 영화에선 '살인자나 목사님이나' 라는 대사나 죽은 사기꾼의 집 십자가 문패나, 박서준이 죽은곳이 성당이라는 점에서 종교적인 요소가 곳곳에 스며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정확히 종교와 연관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모르겠다.)

 

후에 홀로남은 박보영은 건물이 쓰러져 시공간이 뒤틀린 것처럼 보이는 아파트에서 깨어나 거기서 군집을 이루고 있던 생존자들과 합류하게 된다.

 

황궁 아파트의 집단주의 체제를 생각하고, 여기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 박보영에게 거기 사람들은 뭘 하냐고 '그냥 살아남는거지' 하며 먹으라며 주먹밥을 쥐어준다.

 

주먹밥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황궁 아파트 소문을 들은 그곳 사람들이 박보영에게 황궁 아파트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기괴하고 난폭하냐 묻자 박보영은 '아니라고, 그들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대답하며 영화는 끝난다.

 

 

사실 이병헌과 박서준 캐릭터도 후반부에 뭔가 좀 아쉽긴 했지만 영화 내내 가장 아쉬웠던 캐릭터는 박보영이다.

 

자신과 가족이 생존하는 일과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덕성 사이에서 언제나 선을 추구하고 높은 도덕성을 고수하는 캐릭터인데, 그런 훌륭한 캐릭터가 되었어야 할 인물을 너무 단조롭게 그려내어,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겐 빌런 이란 소리까지 듣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도덕성을 추구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극중 박보영 처럼 대나무 자루처럼 바로 도덕적으론 그렇게 하면 안되지 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예민하게 굴며 독단적 행동을 하는 건 도덕성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부지하는 일과 옳은 일을 행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갈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부여잡고 의지를 잡아 옳은 일을 하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로 그렸으면 어땟을까 싶다. 좀 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존경할 만하게 그려냈어야 한다. 표정이나 말투도 다른 사람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도덕표준이 없는 것 같아 짜증내고 예민해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결의를 다지는, 좀 더 무겁고 진중한 캐릭터로 담아냈어야 했다. 고뇌하고 힘들어하지만 끝까지 선을 지키는... 

캐릭터가 너무 아쉽다. 박보영도 기존의 틀에 박힌  연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박보영이 마지막에 합류하게 된 생존자 그룹의 옆으로 쓰러진 아파트가 진정한 유토피아 인것 처럼 그려졌는데, 그들은 그러면 어떻게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잘 살 수 있는지 그런 근거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들의 대사는 단순히 '살아 있으면 사는거지' 라는 사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각자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위해서 협력한다' 로 들리는데 그런 사상의 기반이 과연 유토피아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만 든다. 

 

여튼 캐릭터 설정과 결말이 여러모로 아쉬웠던 작품이다. 

 

 

'영화와 책 리뷰 > 국내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남한산성 리뷰  (3) 2023.05.05